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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유제품 기업 인도밀크(Indomilk)의 한국풍 우유 시리즈. ‘강릉 달고나 커피’ ‘해남 고구마’ 등 한국 지명을 제품명에 쓰고, 포장 앞면에 ‘달고나 커피’ ‘고구마’ 같은 한글을 넣었다. 인도밀크 홈페이지
“자카르타 편의。에 강릉 달고나 커피를 팔아!”
지인이 보내온 현지 편의. 사진 속 우유 팩에는 한글로 ‘달고나 커피 대박’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옆줄에는 해남 고구마, 서울 바나나, 제주 초콜릿맛 제품이 나란히 서 있다. 얼핏 보면 한국 제품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의 제품이다.
진열대 앞에서 이 글자들을 읽을 수 있는 현지인들은 얼마나 될까? 읽지 못해도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글자라는 것은 알아본다. 한국 라면 ‘너구리’는 한글을 모르는 외국 소비자들에게 뜻밖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봉지를 거꾸로 보면 한글 ‘너구리’가 알파벳 ‘RtA’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제조사는 아예 ‘앵그리 RtA’라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읽지 못하는 글자가 오히려 새로운 상품명을 만들어내는 해프닝도 있다.
남의 나라 기업까지 왜 굳이 읽지도 못하는 한글을 포장지에 집어넣을까? 한글이 어느새 해외시장에서 가장 일 잘하는 영업사원이 됐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한국어 대신 현지어나 영어를 사용했다. 현지 법적 규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제품을 잘 모르는 현지 소비자에게 친절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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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일본식 표기인 ‘라멘(ramen)’ 대신 한국식 ‘라면(ramyeon)’을 쓰거나, 영어로 풀어쓰던 ‘rice cake’ 대신 ‘떡(tteok)’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살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 대형 유통사(코스트코)는 한국 아이스크림 업체의 수출용 제품 포장에 한글명을 넣어 달라고 역으로 요청했다. 한글이 적혀 있어야 ‘진짜 K푸드’라는 신뢰를 얻는다는 이유에서다.
그 배경에는 한국 콘텐츠를 통해 쌓인 이미지가 있다. 드라마와 영화, K팝을 통해 한국을 경험한 해외 소비자들에게 한글은 한국 제품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내는 기호다.
읽지 못하는 기호가 신뢰로 이어지는 일은 처음이 아니다. 미국 마트에서는 유대교 율법에 따른 ‘코셔(Kosher)’ 인증 기호가 품질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왔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 코셔 식품 구매자 중 종교적 이유로 구매한 사람은 14%, 품질을 이유로 구매한 사람은 62%였다. 코셔 뒤에는 식품 규정을 확인하는 까다로운 인증이 있고, 한글 뒤에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호감과 기대가 쌓여 있다.
한글은 누구나 인쇄할 수 있는 글자다. 그런 한글이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신뢰를 주는 기호가 됐다는 건 근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신뢰를 한글 자체가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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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다른 나라의 언어가 주던 신뢰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옅어졌듯, 호감이 사라지면 포장지 위 한글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다.
해외에서 한글의 위상이 높아지는 동안, 정작 제 땅인 서울의 풍경은 거꾸로 간다. 힙하다는 거리의 카페나 식당에는 한국어 없이 외국어만 적힌 메뉴판과 간판도 적지 않다. 25년 서울 대학가 간판 조사 결과, 외국어로만 표기된 간판이 29%를 넘는다는 통계는 씁쓸함을 남긴다. 올해는 조선어연구회가 ‘가갸날’을 제정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해외에서는 일부러 한글 표기를 요청하는데, 우리는 외국어를 써야 더 세련돼 보인다고 생각한다. 자카르타의 우유팩에서 ‘대박’을 외치는 그 영업사원이, 서울의 메뉴판에서는 자리를 비우고 있다.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 한 스푼 더 - 한글을 과자로 구운 외국인들
알파벳 모양 과자를 먹으며 자란 방송인 타일러(미국)와 사업가 니디(인도)는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모양 과자가 없다는 데서 의문을 품었다. 두 사람은 10개월 동안 손반죽과 3D 프린팅을 거쳐 2023년 한글날, 자음과 모음 모양의 ‘한글과자’를 선보였다. 단군 신화에서 착안한 쑥과 마늘 맛의 이 과자는 해외시장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다. 외국인들에게 한글은 뜻을 읽는 문자를 넘어, ‘ㅇ’과 ‘ㅁ’처럼 직관적이고 귀여운 디자인 기호로 다가간 것이다. 정작 본토에서는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겨 지나치던 한글의 가치를, 타국에서 온 이들이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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